右碣石(우갈석)과 左碣石(좌갈석)의 위치.





























아래는 라디오가 다시 수정한 해석.
 
<통전> 변방전 동이 고구려조

碣石山在漢樂浪郡遂成縣,長城起於此山。今驗長城東截遼水而入高麗,遺址猶存。按尚書云:「夾右碣石入於河。」右碣石即河赴海, 處在今北平郡南二十餘里,則高麗中為左碣石。
갈석산은 한 낙랑군 수성현에 있으며, 장성이 이 산에서 시작된다. 지금 검증하면, 장성은 동쪽으로 요수를 끊고 고구려로 들어가는데,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尚書(상서)를 살펴 보면, "右碣石(우갈석)을 끼고 河(하)로 들어간다" 라고 전하는데, 右碣石(우갈석)은 즉, 河(하)는 바다로 들어가는데, 위치는 지금의 북평군 남쪽 이십여리에 있다. 즉, 고구려 안에 있는 것은 左碣石(좌갈석)이 된다.


<통전>이나 다른 문헌에서 右碣石(우갈석)과 左碣石(좌갈석)의 위치를 알려 주고 있는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건 우리의 잘못이 큽니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좌/우를 이야기하므로, 왼쪽/오른쪽이 반대가 되지요.

 

저 좌갈석산은 요하 근처에 장성과 만나는 지점이라고 했으므로, 저곳은 직접 현지에 가보지 않으면 파악하기 힘듭니다.

분명 요하 근처에는 갈석산과 비슷한 모양의 바위가 있겠죠.

 

문헌이 잘못된게 아니라, 우리의 판단미스였죠.

<태강지리지>가 말하는 갈석산의 위치를 파악 못한 것은 우리의 책임이 크죠.

2007년 초록불의 '낙랑군'에 대한 글에서도 2개의 문헌이 인용이 되어 있는데, 여기서도 갈석산의 위치에 대한 힌트가 담겨 있습니다.인용해 보면,http://orumi.egloos.com/2969313<통전> 권178 주군8盧龍漢肥如縣。有碣石山, 碣然而立在海旁, 故名之。晉太康地志云, 秦築長城, 所起自碣石, 在今高麗舊界。非此碣石也。 노룡은 한... »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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